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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 현장에서 처음 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만 해도, 저는 정해진 커리큘럼을 얼마나 잘 따라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달랐습니다. 어르신들이 프로그램 내용보다 서로의 한마디에 더 크게 반응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했고, 그때부터 얄롬(Yalom)이 정리한 집단의 치료적 효과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일반화 —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노인맞춤돌봄서비스에서 전담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처음 집단 프로그램에 나오신 어르신 한 분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며 구석에 조용히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어르신이 "밤에 혼자 있으면 괜히 무서울 때가 있어요"라고 꺼낸 한마디에, 그분이 갑자기 "나도 그런 적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얹으셨습니다.
그 순간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이게 바로 일반화(universality)의 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반화란, 자신만 겪는다고 여겼던 문제가 집단 안에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고립감과 불안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혼자 살면서 생기는 두려움을 '내가 이상한가 봐'라고 속으로만 삭혔던 분이, 집단 안에서 "다들 그럴 수 있는 거구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긴장되고 어색해하다가,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서서히 어깨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일반화는 이렇게 안전한 분위기 안에서 집단 자체가 만들어 주는 가장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신의 문제가 보편적임을 인식하면서 수치심과 고립감이 감소
- 집단 안에서 공통된 경험을 확인하며 공동체 감각이 형성
- 말문이 닫혀 있던 참여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표현 시작
희망증진과 이타성 — 집단이 만드는 두 가지 변화
몸이 불편해서 외출을 거의 못 하신다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하게 거동이 불편한 다른 어르신이 매주 꼬박꼬박 프로그램에 나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시더니, 어느 날 조용히 "나도 다음 주에 한번 더 와 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오세요"라고 권유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달라졌던 겁니다.
이것이 희망증진(instillation of hope)입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어려운 상황의 사람이 조금씩 적응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감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노년기에는 "이 나이에 뭘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쉽게 자리 잡기 때문에, 집단 안에서 이런 장면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다릅니다.
이타성(altruism)도 비슷한 맥락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타성이란, 도움을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사람이 집단 안에서 타인을 돕는 역할을 경험하면서 자존감과 자립감이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어르신은 본인도 팔다리가 불편하신 분인데, 옆에 앉은 어르신에게 "밥은 꼭 챙겨 드셔야 해요", "병원은 미루지 마세요"라고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 말을 건네는 표정이 그냥 받기만 할 때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노인복지 현장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입장에 있다 보면, 어르신들이 자신을 '도움받는 존재'로만 규정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집단 안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조언을 건넬 수 있다는 경험은, 그 단순해 보이는 한마디가 어르신 스스로에게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감각을 돌려주는 계기가 됩니다.
정화 — 꺼내지 못했던 감정이 흘러나올 때
어르신들이 가족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자식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말해봤자 뭐 달라지겠냐"는 생각으로 꾹 눌러두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집단 프로그램 안에서 다른 어르신이 먼저 "솔직히 외로울 때가 있어요"라고 말하면, 그게 신호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나둘씩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고, 오랫동안 속에 묵혀 두었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겁니다.
이것이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정화의 기능입니다. 카타르시스란 집단 안의 보호적이고 수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억눌렸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긴장이 해소되는 경험을 말합니다. 단순히 하소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집단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그동안 다른 어떤 곳에서도 꺼내지 못했던 감정이 비로소 말이 되어 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정화의 효과는 억지로 유도할 수 없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오늘은 감정 표현을 해봅시다"라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집단 안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이 쌓였을 때 저절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반 집단 운영에서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감정을 꺼내고 나면 표정이 달라지는 어르신들을 보았습니다. "그냥 말하고 나니 좀 시원하다"는 한마디가, 카타르시스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심리학회에서도 집단 내 감정 표현이 심리적 안녕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모방행동과 가족집단의 교정적 재현 — 배움은 말보다 장면에서
처음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던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 지나면서 다른 어르신이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다음 모임에서 조금씩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한번 말해 보세요"라고 요청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보고, 느끼고,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흐름이었습니다.
이것이 모방행동(imitative behavior)입니다. 모방행동이란 집단지도자나 다른 집단 성원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대화 방식, 감정 표현 방법, 문제 대처 전략을 습득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직접 교육을 받지 않아도, 유사한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오랫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굳어진 어르신들에게, 집단 안의 다양한 행동 모델은 그 자체가 치료적 자원이 됩니다.
여기서 얄롬이 말한 가족집단의 교정적 재현(corrective recapitulation of the primary family group)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집단이 가족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고, 집단사회복지사와 성원 간의 관계가 부모·형제와의 관계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이전에 역기능적이었던 가족 경험을 집단 안에서 새롭게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말레코프(Malekoff)는 이를 '재경험의 기회 제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집단 안에서도 비슷한 역할 분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조용히 챙기는 '부모 같은' 역할을 하고, 어떤 분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막내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 가족관계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지지를 받지 못했던 분들이, 집단 안에서 처음으로 수용받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재경험이 단순한 프로그램 이상의 치료적 의미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운영 안내에서도 집단 프로그램이 사회적 관계 형성과 정서적 지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자주 묻는 질문
Q. 얄롬이 말한 집단의 치료적 요인은 몇 가지인가요?
A. 얄롬(Yalom)은 집단치료의 치료적 요인으로 희망증진, 일반화, 정보 공유, 이타성, 가족집단의 교정적 재현, 사회화 기법, 모방행동, 대인관계 학습, 집단 응집력, 카타르시스, 실존적 요인 등 11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이 중 고유성은 해당하지 않으며, 각 요인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집단의 치료적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현장에서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요인들은 순서대로 작동하기보다 집단의 분위기와 구성원에 따라 서로 뒤섞이며 나타납니다.
Q. 집단의 치료적 효과는 노인 대상 프로그램에도 실제로 나타나나요?
A. 네, 제 경험상 이건 이론보다 현장에서 더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혼자 살면서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적었던 어르신들이 집단 안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일반화와 카타르시스 효과가 비교적 빠르게 나타나는 편이었습니다. 다만 어르신마다 건강 상태와 성격, 인지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인 참여 속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모방행동과 카타르시스(정화)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모방행동은 다른 집단 성원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학습 중심의 과정이고, 카타르시스(정화)는 억눌렸던 감정을 안전한 분위기 안에서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긴장이 해소되는 감정 중심의 경험입니다. 정화 효과는 모방행동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보호적인 분위기가 충분히 형성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두 요인은 작동 방식이 다르지만, 집단 안에서 함께 일어나기도 합니다.
Q. 집단의 치료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나요?
A. 있습니다. 집단 분위기가 안전하지 않거나, 특정 성원이 지나치게 말을 독점하거나, 비밀보장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오히려 집단이 상처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부정적인 감정만 반복적으로 쌓이면 희망보다 무력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것은, 치료적 요인이 작동하려면 사회복지사가 집단의 상호작용과 분위기를 끊임없이 살피고 조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집단의 치료적 효과는 교과서 안에만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일반화, 희망증진, 카타르시스, 이타성, 모방행동, 가족집단의 교정적 재현은 모두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었고, 저는 그 장면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집단이 단순한 프로그램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회복해 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다만 이 효과들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복지사는 집단이 안전하고 수용적인 분위기 안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집단과정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성원들이 각자의 속도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집단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론을 외우는 것보다 집단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먼저 관찰하는 것을 권합니다.
참고: 사회복지실천 - 집단의 역동성, 집단의 치료적 효과
